METRO9 LOUNGE
[추천장소]
‘백범 김구 기념관’ & ‘안중근 의사 기념관’
글ㅣ 중대재해관리팀 김선희 부장님
특별한 광복절의 시작
2025년 8월 15일 광복절은 광복 80주년이라 더욱 특별했습니다.
저는 아이들과 함께 광복의 의미를 되새기고자 광복절 전후로 ‘백범김구기념관’과 ‘안중근의사기념관’을 방문했습니다.
먼저 찾은 곳은 서울 용산구 효창동 효창공원에 위치한 백범김구기념관이었습니다.
8월 10일, 광복절을 일주일 앞둔 일요일. 중학생 아들과 함께 효창공원에 도착했는데, 지하철 6호선을 이용하면 쉽게 올 수 있었고, 주차도 비교적 수월했습니다.
주소 : 서울시 용산구 임정로 26 (효창동 255번지)
전화 : 02-799-3400
주차장 운영 시간 : 07시 - 19시 (*운영 시간 외 이용 시 주차료가 부과되며 익일 07시까지 출차 불가)
주차료 : 300원 / 10분(입차 후 10분 이내 무료) 국가유공자, 장애인 차량 80% 할인 / 저공해차, 경차, 다자녀 50% 할인
1층 입구에 들어서자 중앙홀에서 근엄한 표정의 백범 좌상이 우리를 맞이했습니다. 전시실 입구에는
[백범일지]의 유명한 구절
‘나의 소원’이 새겨져 있어, 나라를 위한 백범의 간절한 뜻을 단번에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전시실에는 백범의 일대기뿐 아니라 가족들의 이야기도 함께 담겨 있습니다. 백범의 어머니 곽낙원 여사는 독립운동가로서
백범의 정신을 키워낸 조력자였고, 두 아들 역시 독립운동에 참여했습니다. 특히 차남 김신은 대한민국 공군 창설에 기여하며 공군참모총장까지 지냈습니다.
또한 ‘백범’의 ‘범(凡)’은 ‘평범한 사람’을 뜻합니다.
이는 백범이 꿈꾼 나라가 바로 평범한 국민이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는 나라였음을 보여줍니다.
기념관에서는 백범의 승려 생활, 옥고, 임시정부 활동 등 굵직한 역사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는 한인애국단을 창설하여
이봉창·윤봉길 의사의 의거를 지원하고, 수많은 독립운동가들과 함께 임시정부를 지켜냈습니다. 결국 임시정부 국무령과 주석, 즉 오늘날의 대통령에 해당하는 자리까지 올랐습니다.
그러나 그토록 염원하던 독립을 맞이했음에도, 1949년 6월 서대문의 경교장에서 안두희의 총탄에 생을 마감했습니다.
전시실에는 백범의 동상, 신발, 그리고 서거 당시 입고 계셨던 옷 등이 남아 있었습니다.
특히 유품 앞에 서니, 그가 족히 190cm는 넘어 보이는 큰 체구의 인물이었음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기념관 관람을 마친 후, 자연스럽게 효창공원을 한 바퀴 둘러보았습니다.
이곳은 단순한 동네 공원이 아니라, 독립운동의 역사를 품고 있는 특별한 공간입니다.
효창공원에는 삼의사(이봉창·윤봉길·백정기 의사)의 유해가 안치된 ‘삼의사 묘역’, 독립운동가들의 영정을 모신 ‘의열사’, 그리고 백범 김구 선생의 묘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국가 사적으로 지정된 이곳은 우리 근현대사의 아픔과 숭고한 정신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장소였습니다.
본래 효창공원은 조선왕실의 묘역인 효창원이 있던 자리였습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는 일제가 골프장으로 사용하기도 했고, 해방 이후에는 독립운동가들의 유해를 모시는 공간으로 변했습니다.
6.25 전쟁 이후에는 효창운동장이 들어서 국제 축구 경기가 열리기도 하는 등, 시대의 격변을 고스란히 품고 있었습니다.
공원 안에는 윤봉길 의사의 도시락 폭탄 투척 장면을 형상화한 동상과 함께 삼의사 묘역이 있습니다.
이 묘역에는 특이하게도 묘가 하나 더 있는데, 바로 안중근 의사의 가묘입니다.
안 의사는 대한의군 참모중장으로 순국했지만, 일제는 유해가 독립운동의 성지가 될 것을 두려워해 끝내 돌려주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후대는 언젠가 돌아올 날을 기리며 이곳에 가묘를 마련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백범 김구 선생의 묘 앞에 서며, 다시 한 번 그 숭고한 뜻을 되새길 수 있었습니다.
무더운 여름날이었지만, ‘내가 그 시대에 태어났다면 저분들처럼 할 수 있었을까?’라는 깊은 질문만이 마음에 남았습니다.
아이와 함께 발걸음을 옮기며, 오늘의 자유가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님을 다시금 느꼈습니다.
8월 15일 광복절 아침. 일어나자마자 태극기를 스스로 게양한 딸아이와 함께 지하철을 타고 남산에 있는 ‘안중근의사기념관’ 으로 향했습니다. 서울역에서 내려 갈대밭으로 새롭게 조성된 한양도성길을 따라 걸어 올라가니, 후덥지근한 날씨에 금세 땀이 흘렀지만 전혀 힘들다고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백범광장에서 느낀 광복의 의미
남산 중턱에 오르자 백범 김구 선생과 대한민국 초대 부통령을 지낸 이시영 선생의 동상이 자리한 백범광장이 나왔습니다.
활짝 핀 무궁화가 이날따라 더욱 아름다워 보였고, 백범 동상 앞에는 광복절을 기념하는 헌화가 놓여 있었습니다.
땀에 흠뻑 젖은 채로 드디어 남산도서관 옆에 자리한 안중근의사기념관에 도착했습니다. 이곳은 지하 1층부터 지상 2층까지 총 3개 층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광복절이라 많은 시민들이 찾았고 다양한 행사도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최근 뮤지컬 영웅과 영화 하얼빈의 인기로 아이들도 안중근 의사의 업적을 잘 알고 있어, 함께 전시를 둘러보며 더욱 의미 있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전시관 입구에서 마주한 안중근 의사의 동상은 오늘따라 더욱 늠름해 보였습니다.
전시는 의사의 탄생 전후의 시대적 배경에서부터 조선, 대한제국, 그리고 대한민국에 이르는 격동의 흐름을 담고 있었습니다.
특히 단지회 활동을 보여주는 안중근 의사가 스스로 자른 손가락 장면이 빔프로젝터로 재현된 화면 앞에 서니, 저도 모르게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
이곳은 지하 1층부터 지상 2층까지 총 3개 층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광복절이라 많은 시민들이 찾았고 다양한 행사도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최근 뮤지컬 영웅과 영화 하얼빈의 인기로 아이들도 안중근 의사의 업적을 잘 알고 있어, 함께 전시를 둘러보며 더욱 의미 있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공간은 제3전시실이었습니다. 하얼빈 의거, 재판 과정, 순국의 순간까지 ‘대한의군 참모중장’으로서 보여준 안중근 의사의 강인한 정신과 행동이 생생히 전해졌습니다.
특히 옥중에서 집필하다 미완으로 남은 《동양평화론》은 지금까지도 깊은 울림을 줍니다.
그는 '일본의 동양 지배, 패권'이 아닌 '한중일 3국의 주권 존중, 협력'을 전제로 3국을 회원국으로 하는 ‘동양평화회의’를 창설해 군사연합, 상호 어학교육, 공동은행 설립, 공용화폐 사용, 경제협력을 통해 항구적인 평화와 번영을 이루자는, 오늘날로 치면 ‘동북아연합 구상’을 제안했습니다.
안중근 의사는 단순히 독립만을 바란 것이 아니라 100년 뒤 동아시아가 어떤 길을 걸어야 번영할 수 있을지를 내다본, 매우 장기 지향적인 비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지금의 시각에서 보아도 국제 협력과 평등을 강조한 그의 사상은 여전히 유효하며, 당시로서는 놀라울 만큼 앞서간 비전이었습니다.
딸아이는 저보다 더 집중해서 관람하더니, 광복절 이벤트로 열린 퀴즈를 모두 맞추고 텀블러까지 받아와 더욱 기특했습니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건, 평소 다녀온 장소가 교과서 속에 등장할 때 아이가 책을 가져와 함께 기억을 떠올리는 순간이었습니다.
아이는 “그날 직접 보고 배운 덕분에 교과서 내용이 훨씬 잘 이해됐다”고 말해주었습니다.
국경일과 기념일은 매년 찾아오지만, 직접 기념관과 박물관을 방문하며 역사를 체험하는 경험은 특별한 울림을 줍니다.
이번 광복 80주년, 아이와 함께한 안중근의사기념관 방문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우리 9호선 가족 여러분도 꼭 기념일이 아니더라도,
여유가 될 때마다 역사 현장을 찾아 우리의 뿌리를 되새기는 시간을 가져보시길 추천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