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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도서]
스토너-나는 묵묵히 살아내는 법을 배웠다
글ㅣ 전략기획팀 천필재 차장님
소설을 안 읽은 지 오래된 것 같다. 한참 만에 읽은 책이다. 읽게 된 계기는 인터넷 쇼츠에서였다.
코미디언 김영철이 홍진경 집에 방문했는데, 거기서 스토너를 발견하고 자기 인생 책인데
너도 읽었느냐고 엄청나게 반가워하는 장면을 보았다.
가끔 그럴 때가 있다.
나만 알고 있는 것을 누군가 알 때, 왠지 이 사람이 반갑고, 나랑 ‘같은 류’구나 하고 친해질 수 있을 것 같다.
그 대상이 희소할수록 그 감정은 커진다.
저 멀리 이역만리의 한국인이라곤 아무도 없는 곳에서 고향 사람을 만난 것처럼. 김영철의 반가운 표정에 스토너를 읽고 싶어졌다.
읽고 난 소감을 말하자면, 스토너의 삶은 그저 묵묵히 견뎌낸 시간들이었음을 느꼈다.
주인공 존 스토너는 특별한 업적을 세우거나 화려한 삶을 살진 않았지만,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과 닮아 있었다.
때로는 내 모습 같기도 하고, 부모님이나 지인, 혹은 길에서 스쳐 지나간 누군가 같기도 했다.
그래서 더 오래 마음에 남았다.
1910년에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스토너는 농업을 배우기 위해 농과대학에 진학한다.
그런데 영문학개론 수업에서 셰익스피어를 접하고 그의 인생이 바뀌게 된다. 문학을 사랑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농부가 되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대학에 남아 영문학 교수가 된다.
그러는 중 첫눈에 반한 이디스와 결혼하지만, 결혼 1년 만에 결혼생활은 무너진다. 가치관이 너무나 달랐기 때문이다.
이런 불화 속에서도 스토너는 삶의 희망을 위해 딸에 대한 사랑과 학문에 더 몰두하지만, 딸과도 잘 지내지 못하게 되고,
동료 교수와의 대립으로 학교생활도 순탄하지 않았다. 그런 스토너의 삶에도 한 번의 불꽃이 타오른다.
대학원생 제자 캐서린과의 사랑이었다.
캐서린은 남들이 보지 못하는 스토너의 내면을 본 것이다. 그러나 그 사랑도 결국 중도에 깨지고 만다.
그 후로도 스토너는 최선을 다해 삶을 살아내다 죽음을 맞이한다.
주변 동료들은 스토너를 보고 지리멸렬한 삶을 살았다고 생각했다.
더러는 놀림감 취급을 했다. 너무 단순한 삶이었기 때문이다.“스토너에게 즐거움은 있었을까?”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맞다. 스토너는 평생 외로움과 고통, 좌절을 묵묵히 견뎌냈다. 그의 인생 통틀어의 표정은 무표정이었을지도 모른다.
진심으로 웃은 적이 있었을까? 그래도 그는 자신의 길을 걸었다.
평범한 삶 속에서도 의미를 찾기 위해 하루를 허투루 보내지 않았다.
이 태도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일 수도 있다. 스토너의 아버지가 그가 농과대에서 영문학으로 전공을 바꾼 것을 알았을 때,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묵묵히 받아들이는 것이다. 스토너의 아버지도 스토너였다.
소설 마지막 부분, 죽음이 다가왔을 때 스토너는 섬망처럼 스스로에게 반복적으로 되묻는다.
이 질문이 먹먹했다.
‘넌 무엇을 기대했나?’ 죽을 때가 되어서야 물은 것이다.
무엇을 기대해서 그 긴 세월을 견뎌냈나? 무엇이었을까? 학문적 성취였을까? 딸의 행복이었을까?
캐서린과의 우연한 재회였을까? 답은 모른다.
이 책을 덮은 뒤에도 한동안 스토너는 내 안에 머물렀다.
창밖 풍경을 멍하니 바라볼 때도, 지하철역 계단을 오르내릴 때도, 불현듯 그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는 어머니이자, 외할아버지였고, 퇴근 후 집으로 돌아가는 내 모습과도 닮아 있었다.
아침 첫 차를 운행하는 기관사일 수도 있고, 해가 뜨기 전 묵묵히 출근 준비를 하는 고객안전원일 수도 있다.
마트 계산대에서 차례차례 바코드를 찍는 사람,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자리에서 신문을 건네는 사람일 수도 있다.
그렇다. 스토너는 화려한 영웅담의 주인공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 주변에서, 혹은 거울 속에서 마주칠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의 얼굴을 하고 있다.
소리 없이 하루를 견디고,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그 속에서 나름의 의미를 찾아가는 사람들.
어쩌면 우리 모두는, 크고 작은 무대 위에서 각자의 ‘스토너’를 연기하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