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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장소]
남영동 대공분실, 민주주의 흔적을 걷다.

글ㅣ 산업안전처 김선희 부장님

1987년 6월, 그날을 기억하며

1987년 1월,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일어난 박종철 열사의 고문 치사 사건은 국민적 분노를 일으켰습니다.
그리고 같은 해 6월 9일, 서울 연세대학교 앞에서는 이한열 열사가 시위 도중 최루탄에 맞아 중태에 빠졌고, 끝내 숨을 거두었습니다. 이 비극은 다음 날인 6월 10일, 전국적인 민주화 시위를 촉발시키는 계기가 되었죠.
이날은 바로 대한민국 현대사의 중요한 전환점인 6월 항쟁의 시작이었습니다. 다행히 영화 [1987]을 통해 많은 이들이 이 사건을 다시 기억하게 되었고, 저 또한 몇 년 전 이 영화를 본 뒤로 6월 항쟁의 의미를 마음 깊이 되새기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6월’ 하면 어떤 날이 가장 먼저 떠오르시나요?
아마도 개인적인 기념일이 없다면 6월 6일 현충일, 혹은 이제는 역사책 속 이야기처럼 느껴지는 6·25 전쟁 기념일을 떠올리실 겁니다.

하지만 이 6월엔, 우리가 절대 잊어서는 안 될 또 하나의 날, 바로 1987년 6월 10일, 민주주의의 가치를 지켜낸 날이 있습니다. 서울시청 앞을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 시민들이 한목소리로 외쳤던 그날, 우리는 ‘민주주의는 저절로 주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정확히 38년이 흐른 2025년 6월 10일, 그 역사적 공간이었던 남영동 대공분실이 ‘민주화운동기념관’으로 정식 개관했습니다. 저는 개관 주 토요일, 딸과 딸의 친구들과 함께 사전 예약을 하고 그곳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그날, 저는 단지 ‘기념관’을 넘어서, 기억과 마주하는 공간과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민주화운동기념관 운영정보 및 전시관 구성, 전시관 외관 사진

기념관 출입구를 지나면 새로 지어진 M1 '남영동 대공분실' 건물인 M2관이 나란히 위치해 있습니다.
각 건물에는 별도의 안내 팸플릿이 준비되어 있으며,정기 해설 프로그램도 운영되고 있습니다. 다만, 예약이 빠르게 마감되니 사전 신청은 필수입니다.

먼저, M1 전시관부터

M1관은 새로 지어진 건물로, 지하 2층부터 지상 1층, 옥상까지 전시공간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전시관은 모두 상설 전시로 운영되며, 예약 없이 자유롭게 관람할 수 있습니다. 이곳에는 대한민국 민주화운동의 역사와 흐름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다양한 전시가 구성되어 있어, 말 그대로 우리나라 민주화운동의 거의 모든 것을 담아낸 공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억을 마주하는 공간, '민주의 기억' 전시실

특히 인상 깊었던 공간은 M1관 지하 2층의 ‘민주의 기억’ 전시실입니다.

이곳은 민주화운동과 관련된 장소, 인물, 노래 등을 키오스크 형식으로 전시하고 있어, 화면을 터치하면 마치 주크박스처럼 당시의 음원이나 이야기가 재생되는 체험형 전시 공간입니다. 모든 기억을 온전히 이해하긴 어렵지만, 그 시절의 공기와 감정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특히 아이들이 이 전시 공간에서 1시간이 넘도록 머물며 흥미롭게 관람할 정도로, 세대를 초월해 관심을 끄는 콘텐츠들이 많았습니다.

이 외에도 M1관에는.. M1전시관 사진

4.19 혁명, 5.18 민주화운동, 유신 체제, 독재 시절의 기록, 그리고 남영동 대공분실과 관련된 이야기들까지...다양한 한국 민주주의의 주요 장면들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전시되어 있습니다. 심지어 영화 [1987]에서 사용된 운동화 소품까지 전시되어 있어 기억과 현실, 그리고 미디어 속 역사가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예약이 필요한 M2관

M1 전시관을 충분히 관람한 후, 사전 예약한 시간에 맞춰 M1 1층 안내 데스크에 집결했습니다.
바로 M2관, 실제 남영동 대공분실 건물의 관람을 위해서입니다. M2관은 사전 예약제로 운영되며, 예약 시간에 맞춰 담당 안내자의 인솔 하에 단체로 입장하게 됩니다.
입장 후에는 자율 관람이 가능하지만, 건물 특성상 관람 동선은 비교적 정해져 있어 자연스럽게 따라가며 둘러보게 됩니다.

전시관 입장 사진, 과거 '남영동 대공분실'

이곳이 바로, 과거 '남영동 대공분실'로 사용되었던 본관 건물입니다. 전체 7층 규모의 건물로, 이 중 6~7층은 후에 증축되어 최근까지 공공기관으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현재 전시관은 1층부터 5층까지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시절의 공간을 가능한 원형에 가깝게 보존해두고 있어 더욱 생생하게 당시를 체감할 수 있습니다.

M2 전시 팜플렛 사진, 드디어 입장한 M2

1층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TV 프로그램 [선을 넘는 녀석들]에서 보았던 나선형 계단이었습니다.
건물 뒷문을 통해 들어오면 바로 마주하게 되는 이 계단은, 처음부터 고문을 위한 설계였다고 합니다.
눈을 가린 채 이 계단을 오르면 지금이 몇 층인지, 어디로 가는지도 알 수 없게 되어 공포감과 혼란을 극대화시키는 구조였다고 들었습니다. 실제 공간을 마주하니, 화면 너머로 보던 것보다 훨씬 더 묵직하고 섬뜩한 기운이 느껴졌습니다.

나선형 계단 사진

시계가 늘 고장 나 있던 이곳에서는지금이 몇 시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 이야기를 담은 전시가 바로
2층의 ‘잃어버린 시간’입니다.

잃어버린 시간 사진.

그 공간을 지나 3층으로 올라가면, 5층에 있는 15개의 조사실과는 별도로 더 넓고 무거운 분위기의‘특수조사실’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이곳은 당시 가장 잔혹한 고문이 이루어졌던 장소 중 하나라고 합니다. 3층으로 올라갔습니다. (5층 15개의 조사실과 별도로) 3층에는 아주 큰 특수조사실이 있었습니다.

전시관람 나이제한 공지, 특수조사실은 13세 이상 관람이 가능합니다.

3층의 특수조사실은 고문과 관련된 내용이 사실적으로 전시되어 있어, 초등학생 이하는 원칙적으로 관람이 제한됩니다.
딸아이와 친구들이 초등학교 5학년이라 관람이 가능한지 문의해보니,
부모와 아이 모두가 동의한다면 예외적으로 관람이 가능하다는 안내를 받았습니다. 저희는 아이들의 의견을 먼저 물었고, 아이들의 선택에 따라 함께 관람하기로 했습니다.

분위기부터 다른 '특수조사실'

3층 특수조사실은 분위기부터 달랐습니다. 짙은 조명 아래 스산한 음향이 계속 흘러나왔고,좁고 긴 창문, 벽에 놓인 고문 도구들, 그리고 화장실의 짙은 붉은색 타일까지…공간 전체가 공포감을 극대화하도록 설계되어 있었습니다.

방문 전, 영화 [1987]과 5·18 관련 영상들을 함께 보며 아이들과 나름대로 공부를 하고 왔지만, 막상 현장을 마주하자 딸아이는 너무 무서웠는지 눈물을 터뜨렸고, 결국 관람을 중단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남은 4층과 5층은 딸의 친구들과 함께 관람을 이어갔습니다.

특수조사실 사진과 겁에 질려 울음을 떠뜨린 딸아이 사진

4층에는 박종철 열사와 6월 항쟁 관련 전시가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당시의 기록과 사진, 육성 자료들을 통해 그날의 외침과 희생을 다시금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4층 전시관 내부 사진

이후, 그 시대 건물 특유의 낡은 계단을 따라 5층으로 올라갔습니다.

긴 복도를 따라 양옆으로 15개의 조사실이 나란히 배치되어 있었고, 그중 일부는 실제로 고문실로 사용되던 공간이었습니다.
복도 한쪽 끝에는, 1층에서 시작되었던 나선형 계단의 입구도 다시 등장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박종철 열사가 고문 끝에 숨을 거둔 ‘509호’를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이 공간은 유가족의 뜻에 따라 당시의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함께 관람하던 딸의 친구들이 “저 분이 대학생이었어요?”라고 물었고, 저는 그저 “응, 서울대 3학년이었어”라고 답한 뒤 한동안 어떠한 말도 이어가지 못했습니다.

그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대학생… 대학교 3학년…” 그리고 오래도록 그 자리에 조용히 서 있었습니다.

박종철 열사의 조호실 509호, 민주화운동기념관 이것만은 알고 가세요!

남영동 대공분실 건물은 설계 당시부터 고문을 목적으로 지어진 공간이었습니다.
이를 보여주는 대표적 구조적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 음향과 조명: 긴장감과 불안감을 유도하는 방식으로 설계
• 화장실 타일 색상: 붉고 짙은 색감을 사용해 공포심을 자극
• 나선형 계단: 방향 감각을 잃게 하여 혼란을 유도
• 좁고 긴 창문: 투신을 막기 위한 구조
• 조사실 내 욕조 설치: 고문 흔적을 쉽게 감추기 위한 목적

기념관은 두 개의 동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 M1관: 상설 전시관으로, 예약 없이 자유롭게 관람 가능
• M2관: 실제 남영동 대공분실 건물로, 사전 예약이 필요하며 지정된 시간에만 관람 가능

M1, M2 전시관 사진

서대문형무소, 유관순열사기념관, 전쟁기념관 등 여러 역사 공간들을 방문했을 때와는 달리, M1 전시관을 둘러볼 땐 마음속 깊은 울림이 크게 느껴지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M2, 바로 남영동 대공분실 건물에 들어서는 순간, 설명하기 어려운 묵직한 감정이 가슴 깊숙이 차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그 공간을 걷는 내내 먹먹함과 아픔이 번갈아 밀려들었고, 그 시절 이곳에서 벌어졌던 일들이 결코 먼 과거로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1980년대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고스란히 간직한 남영동 대공분실. 2025년 6월, 민주화운동기념관으로 새롭게 개관한 이 공간을 한 번쯤은 꼭 직접 방문해 보시길 권합니다.

당연하게 누리는 오늘의 자유와 권리가 결코 당연하지 않았음을 절실히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