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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장소] 1편 - 역사의 봄,
발자취를 따라 세 달을 걷다

글ㅣ산업안전처 김선희 부장님

안녕하세요. 산업안전처 김선희 부장입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본 이 문장은, 올해 봄 제 삶 속에 더욱 깊게 스며들었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근현대사의 굵직한 흔적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바쁜 일상 속에서 우리는 그 길을 그냥 스쳐 지나가곤 하죠. 이번 2월부터 4월까지 저는 초등 고학년과 중학생인 두 아이와 함께 ‘기억의 길’을 따라가 보기로 했습니다.

직접 발로 걷고, 눈으로 보고, 함께 이야기 나눈 그 길 위에는 책으로는 느낄 수 없는 울림이 있었습니다. 물론 저는 역사 전문가도, 박물관 해설사도 아닙니다. 아이들과 함께 하나하나 배우고 느낀 소중한 경험을, 이 글을 통해 조심스럽게 나누고자 합니다. 다소 주관적인 시선이 담겨 있을 수도 있겠지만, 한 가족의 ‘배움의 여정’으로 너그럽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첫 번째 이야기 : 2025년 2월에 찾은 1986년 2월, 아관파천 이후 고종의 길

2025년 2월, 저는 아이들과 함께 ‘고종의 길’을 따라 걸었습니다.
그 길 위에는 조선의 혼란기, 나라를 지키고자 했던 발걸음들이 조용히 남아 있었습니다.

시대흐름으로본주요역사

이 사건 이후, 고종은 러시아 공사관에 머물며 덕수궁을 오가며 국정을 이어갔습니다.
당시 고종이 사용하던 이면도로는 상대적으로 안전한 길이었고, 이를 지켜본 미국 외교관들은 조선의 왕이 걷는 길이라 하여 ‘King’s Road’, 고종의 길이라 불렀습니다.

King’s Road, 고종의 길

소개 _ 중구 정동 적수궁 돌담길에서 정동공원과 러시아 공사관까지 이어지는 총 120m의 길
개방일 _ 매주 화요일 ~ 일요일 (월요일 비공개)
개방시간 _ 09:00 ~ 18:00 (입장마감 17:30), 동절기 (11월 ~ 1월) 09:00 ~ 17:30 (입장마감 17:00)
입장료 _ 무료
유의사항 _ 반려동물 입장 및 자전거 등 운동기구 소지 제한

1.덕수궁, 석조전

먼저, 덕수궁부터 천천히 둘러보세요.
당시 고종은 경복궁 대신 덕수궁을 행궁(훗날 황궁)으로 삼아 집무를 이어갔습니다.
정문을 지나 석조전까지 천천히 걸어보며, 대한제국 시기의 고즈넉한 분위기를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2.평성문

석조전 뒤 ‘평성문’을 통해 밖으로 나옵니다.
평성문을 지나 작은 언덕을 오르면, 드디어 ‘고종의 길’이 시작됩니다.
그 길의 이름은 짧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3.King’s Road

120m 남짓한 짧은 길, 그러나 고종에게는 멀고도 험한 길이었습니다.
파란 화살표를 따라 걷다 보면, 작은 정동공원이 나타나고,
그 안에는 러시아 공사관(‘아라사’ 공관)의 잔존 건물이 아직까지도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4.서울역사박물관

그리고 길 끝에는, 꼭 아이들과 함께 들러보셔야 할 장소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 서울역사박물관
- 경희궁 (5대 궁궐 중 하나)
- 돈의문박물관마을 (4대문 중 하나였던 '돈의문'의 역사와 복원을 살펴볼 수 있는 공간)

이 여정은 단순한 산책이 아니라, 아이들과 함께 과거를 밟고 오늘을 되새기는 시간이 되어 주었습니다.
“왜 고종은 그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을까?”를 아이와 함께 이야기 나누며 걷다 보면, 짧은 길 위에 담긴 깊은 의미가 어느새 마음에 고요하게 남습니다.

이후 고종은 1897년, 500년 조선 왕조의 막을 내리고 ‘대한제국’을 선포합니다.
조선을 황제의 나라로 다시 태어나게 하려는 결심이었지만, 나라 안팎의 친일 세력에 의해 그의 개혁은 번번이 가로막히고 맙니다.
결국 1907년, 강제로 폐위된 고종은 더 이상 정치 전면에 나설 수 없게 되고, 1910년, 대한제국은 일제에 의해 강제로 합병되며
우리 역사의 가장 아픈 시기, 일제강점기가 시작됩니다.

시대흐름으로본주요역사

이후 조국을 되찾기 위한 독립운동의 불씨는 점차 전국으로 번져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1919년 1월, 고종이 식혜를 마신 뒤 갑작스러운 경련과 함께 승하합니다. 하지만 그의 죽음은 석연치 않았습니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이가 모두 빠지고 혀가 닳아 없어졌으며, 온몸이 부어올랐다고 합니다.
이 충격적인 소문은 곧바로 ‘고종 독살설’로 번졌고, 백성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습니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국민적 울분은 하나의 함성으로 모이기 시작했고,

그해 3월 1일, 전국 곳곳에서 “대한독립 만세!”가 울려 퍼졌습니다.

삼일운동모습

그날, 계급도 나이도 가리지 않고 수많은 이들이 거리로 나와 나라의 독립을 외쳤고, 민족의 의지를 세계에 알린 3·1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고종의 장례행렬이 지나간 길, 흥인지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