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TRO9 ESSAY
역명 앞에 기업 이름,
괜찮은가요?
글ㅣ 신사업추진처 장태평 대리님
도시철도는 시민의 발이자, 도시 인프라의 핵심입니다.
누구나 이용하는 공공의 공간이기에, 지하철역의 이름 또한 공공성을 담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최근엔 지하철 운영기관들이 재정 확보를 위해 ‘유상 역명 병기’ 제도를 도입하며, 지하철역 이름 속에 상업적 요소를 더하고 있습니다. 공공 인프라의 이름에 기업이 병기되는 상황은, 자연스럽게 ‘공공성과 상업성’ 사이의 균형이라는 질문을 던지게 만듭니다.
서울교통공사는 2016년, 국내 최초로 유상 역명 병기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역명 옆에 기업명이나 기관명을 병기해 주는 방식으로, 기업에는 홍보 효과를, 운영기관에는 수익 확보의 기회를 주는 제도였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제도는 점차 정체기에 접어들었습니다. 2022년 이후 매출과 신규 계약이 줄고, 최근 2년간 계약의 80%가 수의계약으로 이뤄질 만큼 참여 기업도 감소하고 있습니다.
우리 회사는 2017년부터 역명 병기 사업을 도입해 현재 25개 역사 중 6개 역사에서 유상 병기를 운영 중입니다. 이 외에도 공익 목적에 한해 3개 역사에서 무상 병기 사례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하철역 이름은 단순한 명칭을 넘어 시민들에게 방향과 위치를 안내하는 중요한 정보입니다.
그렇기에 특정 기업명이 병기될 경우, 이용자 입장에서 혼란을 줄 수 있고, 역 고유의 지역성과 공공성이 약화된다는 우려도 존재합니다.
실제로 아래의 사례들은 그러한 논란이 현실로 이어졌음을 보여줍니다.
2023년, 성수역은 ‘올리브영역’이라는 이름으로 병기를 추진했습니다.
CJ올리브영은 높은 유동 인구를 활용한 마케팅 효과를 기대했지만, 시민들과 지역사회의 반대에 부딪히며 끝내 무산되었습니다. 이후 서울교통공사는 재공고를 냈고, ‘무신사’의 참여 가능성이 거론되며 다시금 관심이 집중되기도 했습니다.
이 사례는 상업적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기업의 입장과, 공공시설로서의 지하철이라는 역할 사이의 갈등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최근에는 법무법인도 역명 병기에 참여하는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그러나 법무법인이 특정 지역의 랜드마크가 아닌 점, 그리고 공공 서비스의 성격과 상반되는 법률상담 서비스라는 점에서 논란이 큽니다.
‘이번 역은 법무법인 ○○입니다’라는 안내가 자칫 공공 정보를 광고처럼 오인하게 할 수 있고, 특정 법률 서비스에 대한 홍보로 역명이 변질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삼성전자는 2023년 칠레 산티아고 지하철과 협약을 맺고, 역명을 ‘갤럭시역(Galaxy Station)’으로 병기하는 시도를 했습니다. 이는 글로벌 브랜드가 공공교통 인프라를 활용해 브랜드를 홍보한 사례로 주목받았지만, 동시에 지역과의 연관성이 부족하고 기업 이미지가 지나치게 부각된다는 비판도 받았습니다.
‘지하철역 이름이 광고판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시민의 목소리는, 국경을 넘어 유효한 문제제기입니다.
유상 역명 병기 제도는 분명 운영기관의 수익 확대라는 장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동시에 기업 입장에서도 높은 노출도를 활용한 홍보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공공시설의 이름이 상업적 목적에 의해 운영될 경우, 이용자 혼란, 공공성 훼손 등 다양한 부작용이 나타날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지하철역이라는 공공공간의 이름, 어디까지 기업에 열어주고, 어디서 선을 그어야 할까요?
공공성과 상업성 사이, 균형 있는 답을 찾는 일이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