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

여러분에게 1984년은 어떤 해인가요?

1984년 1월, 미국의 애플 사에서는 맥킨토시를 처음 공개했고, 5월에는 서울 지하철 2호선의 전 구간이 개통했습니다. 또 그해 여름에는 미국 LA에서 하계 올림픽이 열렸고, 9월에는 서울 잠실 올림픽 주경기장이 개장되었습니다. 아마도 이 글을 읽는 분 중에서는 1984년의 일들이 기억나시는 분들도 있고, 저처럼 그 이후에 태어나 기억할 수 없으신 분들도 계실 거예요.

그렇다면 그보다 35년 전인 1949년 사람들은 1984년을 어떻게 상상했을까요? “동물농장”으로도 유명한 영국의 조지 오웰은 자기 소설을 통해 1984년의 모습을 그렸습니다. 아래 소개할 소설 속의 배경은 글만 읽어도 숨이 턱턱 막히는 독재국가입니다. 실제로 그가 살아온 인생의 대부분은 세계 대전이 펼쳐지고 제국주의적 이념이 만연한 시기였기 때문에 더욱더 회의적이고 염세적인 생각이 들었을 것 같네요.

“전쟁은 평화, 자유는 예속, 무지는 힘”소설 속 사람들은 숨 쉬듯 위 구호를 외우고 다닙니다. “빅 브라더는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 곳곳에 붙어있는 당의 포스터에는 차가운 표정의 남자 얼굴과 함께 위 표어가 쓰여 있습니다.

주인공인 윈스턴 스미스는 아주 평범한 하급 당원입니다. 윈스턴이 사는 오세아니아는 유라시아, 동아시아와 함께 전 세계를 구성하는 세 가지 국가 중 하나이고, 이 세 국가는 항상 서로 전쟁하거나 연합을 하며 계속해서 전쟁을 벌이고는 있으나 서로 크게 영향을 받지 않을 정도로 적절히 싸움을 마무리하는 상황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밖이나 집이나 방에서도 항상 “텔레스크린”이라는 화면에 의해서 감시당하고 있습니다.

마치 사각지대가 없는 CCTV처럼 사람들의 모든 것을 감시하고 기록하고 교정하고자 합니다. 이 세계에서는 개인적인 취미생활이나 자신만의 공간이 없고,

당에서 정한 규정을 어기는 사람들에게는 즉시 텔레스크린에서 무시무시한 목소리가 들려오고, 어디론가 잡혀들어가게 됩니다.

갑자기 사람이 사라지면 실종 신고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닌지 의문이 들지만, 이 곳에서는 그냥 그 사람은 원래부터 존재하지 않은 것처럼 “증발”해버립니다. 어느 언론이나 기록물에서도 그 사람에 관한 내용은 사라져 버립니다. 그리고 남은 사람들도 그게 당연하다고 여기게 됩니다.

또한 당에서는 사람들이 똑똑해지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에 언어를 점차 줄이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좋다”의 반댓말인 “나쁘다” 대신에 “좋지 않다”, “더 좋지 않다” 등으로 단순화시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매일 뉴스에서는 어제보다 오늘이 더 나은 희망찬 내용만을 들려줍니다. 농산물의 생산량과 각종 생필품의 배급량 등이 지난주, 지난달보다 실제로 더 증가했는지는 알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그렇게 믿으면 사실이 되기 때문입니다.

주인공인 윈스턴 스미스는 어느 날 자꾸만 눈에 띄는 한 여자를 보게 됩니다. 혹시나 자신을 감시하러 온 사람이 아닐까 의심하던 윈스턴은 한참 뒤에야 오해를 풀고 “줄리아” 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임을 알게 되죠. 그리고 그 둘은 당국의 눈을 피해 사랑을 키워갑니다. 이 국가에서는 자유로운 사랑도 용인되지 않습니다. 당이 정해준 사람과 오직 생명을 잉태하기 위한 도구로서만 사용되기 때문이죠.

윈스턴과 줄리아는 당의 지도자인 빅브라더와 반대되는 사상으로 통하는 사이가 됩니다. 둘은 런던의 구석에서 가게를 하는 “채링턴”의 도움을 받아 텔레스크린이 없는 다락방을 빌려 비밀스러운 반체제적 대화를 나누고, 당에서 가장 적대적인 인물이며 하루 한 번 2분씩 분노하고 욕을 뱉어야 하는 “2분 증오” 화면의 주인공인 “엠마누엘 골드스타인”의 숨겨진 지하조직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들은 그 조직 “형제단”을 찾아가 “오브라이언”이라는 남자를 만나게 되고, 그는 윈스턴의 반체제적 사상을 검증한 후 새로운 세상을 위해 같이 노력하기로 합니다. 그러나 윈스턴과 줄리아가 그들만의 아지트인 채링턴의 가게 2층 다락방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을 때, 누군가가 다락방으로 들이닥쳤습니다.

바로 형제단을 소개하고 윈스턴과 함께 뜻을 모으기로 한 오브라이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옆에는 윈스턴과 줄리아를 체포하러 온 당원들과 노인 변장을 푼 채링턴이 서 있었습니다.

윈스턴은 가끔 공책 구매와 일기 쓰기 같은 당이 허용하지 않은 눈에 띄는 행동을 했기에 당의 집중 감시를 받던 중 오브라이언이 파놓은 함정에 빠진 것이었으며 그들을 스스럼없이 도와주었던 채링턴은 윈스턴을 감시하던 사상경찰이었습니다.
채링턴의 다락방은 커다란 액자로 가려진 텔레스크린이 윈스턴과 줄리아의 모든 것을 도청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윈스턴과 줄리아는 결국 끌려가 심문을 받고, 엄청난 고문을 받으며 본인의 괴로움을 끝내기 위해 서로를 범죄자라고 지목하기에 이릅니다. 한참 뒤 정신적 신체적 후유증을 앓으며 돌아온 윈스턴은 상상인지 현실인지 모를 상황에서 결국 빅 브라더에게 굴복하게 됩니다.

책을 읽고 알게 된 또 다른 흥미로운 점은, 조지 오웰의 학창 시절 프랑스어 교사였던 “올더스 헉슬리” 또한 조지 오웰처럼 제국주의 신념에 반대되는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그는 “멋진 신세계”라는 또 다른 디스토피아 소설을 출간해내죠. 이 둘 사이에는 재미있는 차이가 존재합니다.

바로 형제단을 소개하고 윈스턴과 함께 뜻을 모으기로 한 오브라이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옆에는 윈스턴과 줄리아를 체포하러 온 당원들과 노인 변장을 푼 채링턴이 서 있었습니다.

미래가 된 지금은 올더스 헉슬리의 예상이 적중했네요.

그렇다면 우리가 조지 오웰처럼 35년 후의 미래를 상상해볼까요? 2021년인 올해로부터 35년 후인 2056년에는 우리는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요? 많은 SF 소설과 드라마, 영화에서 나오는 모습처럼 로봇들과 함께 생활하거나 아니면 아예 이 지구에 없을 수도 있지요.
그렇다면 조지 오웰의 예상은 틀렸다고 해야 할까요? 다행히 소설 속처럼 갑갑한 세상은 아니기 때문에 그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빅데이터를 위한 개인정보 수집이나 위치 추적 허용 등을 미루어보면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은 마치 빅브라더의 감시처럼 항상 기록된다고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이 책을 읽으며 처음부터 중반까지는 널리 알려진 책임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흥미롭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다락방에서 마주친 오브라이언과 채링턴의 모습을 머릿속에서 그리자 저도 모르게 이 책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반전이 있었기에 더 충격적인 소설, 1984를 여러분께 추천해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