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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도서] 자기 앞의 생

 

[추천도서] 자기 앞의 생

여러분은 공쿠르 상에 대하여 들어보셨나요?
공쿠르 상(Prix Goncourt)은 프랑스에서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 가운데 하나로, 작가인 ‘에드몽 드 공쿠르’와 ‘쥘 드 공쿠르’ 형제가 1868년에 최초로 고안하여 1903년에 아카데미 공쿠르의 창설과 함께 상이 제정되었습니다. 이러한 공쿠르 상은 평생 한 번만 수상할 수 있는데요. 같은 작가에게 중복으로 수상할 수 없다는 규칙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공쿠르 상을 최초로 두 번 수상한 작가가 있습니다. 바로 본명으로 한 번, 가명으로 또 한 번 수상한 ‘로맹 가리’입니다.

로맹 가리는 먼저 ‘하늘의 뿌리’라는 작품으로 공쿠르 상을 수상하였고, ‘에밀 아자르’라는 이름으로 ‘자기 앞의 생’을 발표하며 두 번째 공쿠르 상을 수상하게 되었습니다.

이미 여러 분야에서 높은 자리에 올라 있던 로맹 가리는 더 이상 자신의 작품에 사람들이 이전처럼 관심을 갖지 않자, 새로운 이름으로 작품을 발표한 것입니다. 로맹 가리는 두 번째 수상 소식을 듣고 수상을 거절했지만, 작가가 아니라 작품에게 상을 수여한 것이라는 공쿠르 측의 답변을 받게 되죠. 이렇게 특별한 이야기를 품고 있는 ‘자기 앞의 생’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이 책의 주인공은 ‘모모’라는 열 살 소년입니다. 하지만 사실 정확히 몇 살인지, 어디서 왔는지 아무도 모르죠. 사창가에서 태어난 아이들을 맡아주는 보모 밑에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모모는 ‘로자 아주머니’와 같은 처지인 아이들과 함께 엘리베이터가 없는 7층 집에서 지냅니다.

아이들을 맡긴 어머니들로부터 일정한 사례금을 받고는 있지만, 그마저도 얼마 안가 끊어지는 것이 대부분인지라 로자 아주머니는 근근히 생활을 해나가며 아이들을 돌보고 있습니다.
로자 아주머니와 모모 주변에는 그들을 도와주는 이웃들이 있습니다. 철학적인 말들만을 늘어놓지만 모모의 든든한 친구가 되어주는 ‘하밀 할아버지’와 프랑스로 오기 전, 세네갈에서 권투 챔피언이었으나 여장 남자로 살아가는 ‘롤라 아주머니’ 등 외로운 모모와 로자 아주머니를 돕는 친구들이 함께 살아갑니다.

점점 건강이 나빠지는 로자 아주머니와 그를 어떻게든 안심시키고 그들만의 방법으로 도와주려는 장면들은 “사람은 사랑할 사람 없이는 살 수 없다”는 하밀 할아버지의 대답을 대신해주는 것 같습니다.

아직은 미성숙한 어린 아이 같지만 어느 순간에는 어른들보다도 훨씬 성숙한 시각으로 생각하고 바라보는 모모의 시선을 따라가다보니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는데요.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대부분 사회에서 소외된 매춘부, 고아, 유태인, 마약중독자 등이지만 모모는 그들을 편견 없이 대하고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라고 여깁니다. 점점 죽음에 가까워지는 로자 아주머니를 안심시키기 위해 하얀 거짓말을 하는 부분이나, 너무나 사랑하는 강아지를 더 나은 환경에서 살게 하기 위해 부잣집에게 돈을 받고 보내주지만 그 돈을 바로 하수구에 던져버리고 엉엉 우는 장면은 왠지 모르게 모모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어른들도 잊지 말아야 할 동심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모는 어느 순간 열 살에서 열 네살로 제 나이를 찾게 됩니다. 열 살이지만 그보다 훨씬 성숙하게 생각하고 행동하기도 했던 모모는 열 네살이라는 이야기에 무척 기뻐합니다.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했던 제 어릴 적이 생각나기도 하는데요. 어른이 되면 하고 싶은 것을 뭐든 할 수 있고 지겨운 어른들의 간섭을 받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겠지요. 그러나 어른이 되고 보니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깨닫게 되었습니다.

어른들의 보호 없이 내 스스로 살아가고 그에 따라 온전히 책임을 지는 인생이 시작된 것입니다. 이제야 어른들의 말씀이 이해가 됩니다. ‘그 때가 좋았지’, ‘지금 너희 때가 가장 좋은 거야.’와 같은. 원래의 나이를 찾게 된  그 시점의 모모는 어떠한 사건을 겪으며 제목처럼 ‘자기 앞에’ 남아있는 삶을 생각하게 됩니다.

이전의 과거에 더 이상 미련을 두기보다 앞으로 살아갈 생애에 대해 생각하고 살아낼 것이 더 중요한 것이죠. 이 부분은 미흡했던 과거를 자꾸 상기하는 제게는 크게 와닿았습니다. 이미 지나간 과거는 과거일 뿐, 앞으로의 삶, 지금부터의 삶에 집중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듯 어린 아이의 시선으로 인간의 다양한 생애를 적나라하게 그린 ‘자기 앞의 생’. 이미 유명한 도서지만 아직 접하지 못하신 분들은 꼭 한 번은 읽어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