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L9이 추천합니다 ] 추천전시회 - 반고흐: 10년의 기록 展

			반고흐: 10년의 기록 展 VAN GOGH : A record of 10 years Exhibition

			지난 10월 18일부터 2015년 2월 8일까지 약 4개월에 걸쳐 용산 전쟁기념관 기획전시실에서 미술전시회 ‘반 고흐: 10년의 기록 展’이 전시 중입니다. 단순히 원화가 아닌 미디어로 재창작된 3D 타입의 전시물. 웅장하고 현실감 있는 음향을 바탕으로 위대한 화가 반 고흐가 부활하였습니다. 유쾌하고 유익한 이 전시회로 우리사 인사팀 김수연 주임님이 독자여러분을 초대합니다.

 

고흐가 서있던 그 자리에 서다

미술에 남다른 관심이나 식견이 있는 편은 아니지만 제게 빈센트 반 고흐는 늘 흥미로운 대상이었습니다. 정신분열을 이기지 못해 스스로 귀를 자르고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한 그 천재화가의 격렬한 붓터치를 보고 있으면 그가 표현하고자 했던 사물에 대한 열정에 함께 사로잡혀 뜨거워지는 기분입니다.

그의 병명은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와 동일한 ‘하이퍼그라피아(Hypergraphia)’였습니다. ‘하이퍼그라피아’는 뇌의 특정부위에 변화가 생길 때 나타나는 증상으로 흔히 간질이나 조울증이 원인이 되어 주체할 수 없는 창작욕구에 빠지게 되는 질병입니다. 뜨거운 태양 아래서도 하루 14시간 이상의 광적인 그림 노동을 했던 반 고흐를 생각하면 창작활동은 그의 정신병을 치료하는 유일한 돌파구였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듭니다.

이번호 웹진에서는 시대를 앞섰던 희대의 천재 반 고흐의 명작을 특별하게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 여러분께 소개해 드립니다. 저는 어머니를 모시고 전시회를 보고 왔는데요. 4m가 넘는 Full HD급 프로젝터 70여대를 사용한 모션그래픽 기술로 반 고흐의 명작들이 눈앞에서 살아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있는 아주 색다른 전시회라 매우 재미있었습니다.

지금까지 국내 전시회를 통해 소개된 그의 유명작품은 고작 10여점에 불과했지만 이번 전시에서는 총 300여점의 작품을 디지털 이미지로 만날 수 있습니다. 고흐의 그림은 물론, 그림 속 등장했던 인물, 동네, 카페, 교회 등을 대형 영상으로 접할 수 있어 고흐가 서있던 바로 그 자리에서 그 시각으로 바라보는 느낌도 받았습니다.

대형스크린과 기둥, 심지어 바닥 전체를 활용해 실시간 영상으로 구현되는 미디어 아트는 평면에 국한된 그의 예술을 공간으로 확장시킨 듯 했습니다.

이번 전시는 총 5가지 테마로 나누어 보실 수 있습니다.

 
 

1. 위대한 화가로의 도약 (1881-1882)

성직자와 화가 갈림길에서 갈등하던 반 고흐는 동생 테오의 제안으로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지만 무난하지만 생기가 없고 색감을 최대한 살리지 못했다는 평을 듣습니다.

2. 네덜란드에서 (1883-1885)

위대한 화가로서 그의 재능이 확연하게 드러나기 시작한 시기로 자신이 존경하던 농민화가(렘브란트, 밀레, 프란스 할스 등)로부터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깊고 어두운 컬러와 뚜렷한 음영, 거친 붓터치가 특징입니다. 자신만의 스타일을 구축하고 가난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주제로 삼으며 첫번째 대작인 ‘감자 먹는 사람들’을 그립니다.

3. 파리에서 (1886-1888)

파리에서 미술상으로 일하던 동생 테오의 소개로 모네를 비롯한 다양한 인상파 화가들을 만납니다. 전보다 밝고 대담한 컬러를 구사하게 되며 쇠라의 점묘법을 익히게 됩니다. 비싼 모델료를 지불하기 어려워 자신을 모델로 그리게 되었으며 다양한 표현방식을 습득하게 되는 시기입니다.

4. 아를/ 생 레미에서 (1888-1890.05)

1888년 2월 반 고흐는 파리 생활을 청산하고 프로방스의 아를로 이주했습니다. 아름다운 자연을 통해서 그는 자신만의 색채와 화풍을 확립했습니다. 아를에서 그는 화려한 풍경과 꽃, 나무, 열매 등을 화폭에 담았고 입체적인 붓터치가 드러나는 특유의 화법을 정착시킵니다. 이 시기 첫 번째 정신발작으로 본인의 왼쪽 귀를 잘랐고 생 레미 정신병원에 입원한 후 계속적 발작, 환청, 환각에도 불구하고 150점에 달하는 작품을 남깁니다. 생 레미에서 그의 시간은 가장 암울한 시기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꽃이 핀 아몬드나무’, ‘별이 빛나는 밤에’, ‘사이프러스’ 등 수많은 명화를 탄생시킵니다.

5.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서 (1890.05-1890.07.29)

오베르 쉬르 우아즈는 그가 죽기 전 70여일을 머물며 80여점의 그림을 통해 모든 열정을 쏟아낸 장소입니다. 발작과 그림 제작에 지친 그는 오베르의 의사 가셰를 찾아가서 한때 건강을 회복하는 듯 했으나 끝내 들판에서 스스로에게 권총을 겨냥하고 맙니다. 치명적인 상처를 입고 집으로 돌아온 그는 동생 테오가 지켜보는 가운데 이틀 후 숨을 거두었고 그의 유언은 “LA TRISTESSE DURERA TOUJOURS(고통은 영원하다)”였습니다.

 

* 전시 기간:  2014.10.18(토) ~2015.02.08(일)

* 전시 장소:  용산 전쟁기념관 기획전시실

저는 아이러니하게도 고흐가 정신 발작으로 가장 힘들었을 때인 아를과 생 레미 정신병원에서 그린 그림들이 매우 맘에 들었습니다. 특히, 고흐가 동생 테오의 아들인 조카 빌렘의 탄생을 축하하며 선물한 ‘꽃이 핀 아몬드 나무’가 인상적이었습니다. 따스하고 온유한 분위기 속 아몬드 나무는 고흐가 머물던 남프랑스에서 봄을 알리는 전령과 같은 의미라고 합니다. 오랜 겨울을 이겨내고 마침내 따뜻한 햇살아래 찬란하게 핀 아몬드 꽃을 그리기 위해 아마 그는 격정적으로 흔들리는 정신과 마음을 가까스로 억누르며 조카에 대한 사랑을 담아 그림을 그렸을 겁니다.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 진실된 예술은 없다’는 그의 마음을 절실히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이 있듯이 이 좋은 전시회를 말로만 설명한들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시간을 내어 가보시길 추천합니다.

평소 그저 바라보는 미술에 따분하거나 지루하신 분이라면 매우 재미있게 예술을 즐길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고 고흐를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더 즐겁게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 관람 Tip: 반 고흐의 일생을 정리한 ‘반 고흐 위대한 유산’이라는 영화를 미리 보시고 가시면 더욱 반 고흐에 대해 잘 이해하시고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