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호선 문학마당

사돈과의 유럽여행

 

사돈과의 유럽여행

결혼 7년째인 나와 아내는 평상시에는 의견 차이 없이 잘 지내지만, 꼭 양가 부모님에게 드리는 용돈에 관한 부분에서는 잘 타협이 되지 않았다. 원래 살아온 방식이 다르기에 서로의 생각이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하나, 사사건건 트집을 잡는 아내의 심보를 이해할 수 없었다. 예를 들어 어머니 집에 가전이 필요해서 사드리면 아내는 그 돈만큼 꼭 처가에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는 나중에 처가에 필요한 게 있으면 사면되지, 뭘 꼭 그렇게 장사하는 사람처럼 셈을 맞춰야 하냐? 라고 물어도 아내는 한 치의 양보도 없었다. 이때의 아내는 가족이 아니라 회계감사원 같았다. 나는 명절이나 생신같이 양쪽에 다 적용되는 부분은 똑같이 하되, 특수하게 발생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융통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아내는 아니었다. 아내가 이런 태도를 견지하게 된 것은 아마 경제적으로 우리 집보다 처가가 더 여유가 있었기 때문에 내가 처가를 챙기는 데 소홀히 하면서부터일 것이다. 여하튼 이런 일로 양가에 돈을 써야 하는 상황이 오면 우리는 사사건건 의견충돌이 있었다. 물론 시발점은 사별하고 고향에 혼자 계신 어머니를 내가 챙기려고 할 때 발생했다

몇 해 전 봄에 나는 또 아내의 속을 긁는 이야기를 했다. 해외를 안 나가보신 어머니를 위해 유럽여행을 보내드리는 것이 어떻겠냐고 물었다. 아내는 반사적으로, “우리 집은?”이라고 되물었다. “아니, 장모님이나 장인어른은 직장생활하면서 해외 많이 나가보셨잖아.” “그거랑 이거랑은 다르지.” “그래 그럼, 어머니랑 장모님 같이 보내 드리자.” 결국, 우리는 공평의 원칙에 근거해서 양쪽으로 다 전화를 걸기로 했다. 전화를 걸기 전에 나는 어머니가 이 제안을 승낙하지 않을 거로 생각했다. 우리가 드리는 용돈도 늘 필요 없다고 안 받으시려고 하고, 조그마한 선물을 사드려도 부담스러워 하셨기 때문이다. 나름 비용이 많이 드는 유럽여행을 어머니가 원하실 거라는 생각이 안 들었다. 그래도 나는 어머니께 꼭 물어보고 싶었다. 아버지는 내가 결혼하기 한 달 전에 돌아가셨다. 돌아가시기 2년 전부터 누워서만 지내셨기 때문에 어머니 혼자서 병간호를 하셨다. 자식들은 다 분가를 하여 집을 떠나있었기 때문에 아버지의 수족은 온전히 어머니의 몫이었다. 평소 등산을 좋아하셨던 어머니는 병간호하는 동안은 목줄에 묶인 강아지처럼 집을 떠나지 못했다. 내가 가끔 근교라도 다녀오라고 하면 어머니는 혹시나 나가 있는 동안 아버지에게 변고가 생길까 봐 불안하셔서 그럴 수 없다고 했다. 젊어서부터 어머니를 고생만 시키던 아버지는 늙어서도 갓난아기처럼 어머니를 놔주지 않았다. 그렇게 어머니가 그 생활이 익숙해졌을 때쯤 아버지가 떠나버렸다. 어머니는 그런 홀가분함을 원하지 않으셨는데 말이다.

전화를 걸기 전, 아내가 잠시 생각하다가 두 분이 같이 가겠느냐고? 반문했다. 생각해보니 그럴 것 같지가 않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전화를 걸었다. 두 분은 우리의 예상을 깨고 흔쾌히 승낙했다. 나는 내 생각만으로 어머니를 판단하고 있었다. 아버지 때문에 평생을 묶여있었던 어머니는 비행기를 열 시간 이상을 타고 떠나야 하는 유럽여행을 좋아하지 않을 거로 생각했다. 아니 그런 것에 대한 욕구가 없을 거로 생각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날 어머니의 목줄은 풀렸던 것인데 그것을 이해하는 데 3년이 걸렸다. 결혼식 이후로 3년 만에 만나는 사돈 부인들은 12일간 유럽을 같이 여행하기로 했다. 여행 동안 같은 방을 써야 하고 혹시나 자식 이야기가 잘못 나오면 편치 않을 수 있는 사이지만 두 분은 여행을 위해 뭉쳤다.
			생각해보면 예전에 인기 있었던 원로 배우들이 여행을 떠나는 TV 프로그램을 보고 '언젠가 나도?'라는 관심이 생겼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해외여행을 갔다 왔던 친구분들의 자랑을 통해 그 욕구가 강해졌을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그 무엇보다도 눈치 없는 자식들이 먼저 이야기를 꺼내주기를 기다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두 분은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왔다. 여행사를 통해서 30여 명이 같이 갔는데 다들 어머니와 장모님이 같이 온 것을 보고 신기해했다고 한다. 원래부터 친했냐? 등등 질문이 많았는데 다 솔직하게 답하실 수는 없었다고 했다. 여행지에서 편의를 위해 여행객들을 김해팀, 일산팀 등 어디서 왔는지로 이름을 정해 불렀는데 두 분은 거기서 사돈팀으로 불렸다. 12일 동안의 여행이었지만 세계 일주를 한 사람들처럼 이야깃거리가 많았다. 두 분은 거기서 다른 사돈들과는 차원이 다른 우정을 쌓고 왔다.
			내가 그렇게 싫어했던 아내의 공평 원칙 때문에 결혼식 이후로 왕래가 없었던 사돈 부인들이 유럽여행을 같이 가게 되었다. 친한 친구들끼리 가도 싸우고 온다는 해외여행인데 두 분은 다음 여행을 부탁한다며 우리의 등을 다독였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 그 후로도 몇 번 그렇게 사돈끼리 여행을 보내드렸다. 그렇게 우리는 양가 어른들을 속 깊게 챙기는 효자 사위, 효부가 되었다.